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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의 스무 네 번째 고개를 넘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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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댓글 0건 조회조회 257회 작성일 21-05-1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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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의 스무 네 번째 고개를 넘기며.

푸른 말 처럼 그렇게 달려온 스무 네 해. 11월 16일, 스무 네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정대협.

종로에 있는 옥토버 훼스트에서


오후 2시 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기념식은 오후 5-7시에.


정대협 24주년 후원의밤 “날자, 해방으로” 행사를 갖습니다.


정대협 24주년 생일잔치에 오셔서


모두 함께 축하의 주인공이 되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미리 후원티켓을 구입해 주시고


(국민은행 069137-04-010273 정대협)


그 티켓으로 친구와 가족들과 연인과 함께 오셔서


건강에 해가 되지 않을 정도만큼 먹고 마시며


정대협 스무 다섯 고개를 넘을 수 있는 힘이 되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14년 11월 5일, 정대협 상임대표 윤미향 올림


 


20대 청춘 때 정대협 간사였던 저는 ‘아직도 정대협’’에 남아


이렇게 50대를 넘기고,


상임대표를 맡은 지도 어언 8년인 채


정대협 스무 네 돌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60대 때 정대협에 피해자신고를 하셨던 김복동 할머니는 이 해를 넘기면 90이 되고,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90년대 초부터 정대협 운동의 주요 활동가였던 강덕경, 김학순, 황금주, 김순덕 할머니 등 많은 할머니들은 고인이 되신 지 오래,


우리들의 기억 속에 큰 자리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김경순 할머니를 비롯한 또 많은 할머니들은 병상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고,


가장 끝까지 건강할 것이라 생각했던 이용수 할머니도


지금은 무릎통증으로 인해 진통제 주사에 의지해서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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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우리는 그 동안 스무네 해의 고개를 넘을 때마다 해방을 꿈꿨습니다. 희망을 한 번도 던져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고개 고개마다 같은 꿈이라 할지라도 늘 새로운 꿈으로 가슴에 새기며 넘어 왔습니다. 꿈을 꾼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금년 2014년에 꿈꾼 해방은 특히 더 절절했습니다. 해방 70년, 정대협 25년을 앞 둔 해였기 때문입니다.


전후 처음으로 한국과 일본정부간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한일외교국장급 협의가 네 차례 진행되었습니다. 별 성과없이 끝나긴 했지만, 이것은 우리의 운동이 만들어 낸 소중한 결실이었습니다.


유엔인권기구의 관심과 행동을 끌어내는 우리의 활동도 여전히 뜨거워 유엔에서 공개사죄와 법적 배상 등을 요구하는 권위있는 결의와 성명들이 유엔에서 발표되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책임인정과 사법적 정의실현의 당위성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에 청춘들의 열기가 가득가득, 평화를 그릴 수 있었던 한 해였습니다.


1월 1일, 새해 첫날부터 수요일, 1107차 수요시위로 시작하여 12월 31일도 수요일, 수요시위로 마무리되는 2014년. 수요시위마다 평화로를 가득 메워줬던 청소년들은 수요시위를 이전과 다른 색깔로 펼쳐줬습니다. 방학 때는 수백 명에서 천명이 훨씬 넘는 청소년들이 참석하는 바람에 안전문제까지 고민해야 했던 짜릿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다른 시민운동 분야에서 보기 어려운 그런 새로운 희망이 그렇게 우리 활동의 광장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며 ‘행복’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지난 해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한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 캠페인은 청년 대학생들의 열정을 발현해 내는 캠페인으로 자리를 잡아, “유사범죄 재발방지”라는 정대협 활동의 목적이 자연스럽게 세대를 이어가며 실천되는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의 주변 골목을 평화마을로 그려내기 위해 참여한 400여명의 자원활동가들도 당연 청춘들이 만들어낸 열기였습니다.전국 각 대학에서, 전국 각 지역에서 할매나비의 뒤를 따라 청춘나비들이 날갯짓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이었습니다. 물론, 아직은 미숙한 모습들이 간혹 드러나긴 했지만 앞으로 더 깊어지고 여물어갈 것이라는 희망도 보여주었습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도 관람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국내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미국에서, 세계 각국에서 방문하고 관람해 주었습니다.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대협이 만든 [나비기금]은 올해도 콩고로, 베트남으로 평화의 메시지가 되어 전달되었으며, 이 일에 기부로 감동을 더 해 준 많은 나비들 또한 평화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노력의 역부족을 느끼며 스무네 번째 생일을 맞이합니다.


날마다 일본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말로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베정권은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강제성을 부정하고 책임을 부인하려는 발언과 행동들을 계속했으며, 24년 동안 우리와 함께 연대했던 일본시민들의 목소리보다 길거리로 나온 우익들의 목소리가 일본사회를 채웠습니다. 일본군‘위안부’를 매춘부라 언급하며 피해자들에게 가해를 입히는 언행들도 서슴치 않고 토해냈습니다.


스무 네 해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위해서 애쓴 만큼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전진하고, 끝없이 평행선으로 가고 있는 일본정부의 입장이 해결로 조금씩 가까워지는 변화가 만들어져 할텐데, 오히려 평행선의 간격이 더 멀어져버린 그런 2014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중국에 3, 미국에 1, 일본에 1, 국내에 50분 생존해 계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정기적으로 찾아뵙고, 할머니들의 벗이 되기도 하며, 도움을 나눠온 지역의 시민모임들과 국내외 자원활동가들, 희망나비, 해남나비 등의 활동이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눈보라가 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정성으로 함께 해줬기 때문입니다.


트위터들이 마련해준 희망승합차는 1년에 여러 번, 우리들이 전국 할머니들을 방문할 때 루돌프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한지요?


 


스무 네 번째 고개를 넘기며 무엇보다 그 많은 고개를 넘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에 서 있는 우리 모두가 참으로 대견스럽습니다. 함께 서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대협은 스무 다섯 번째 고개도 여러분과 함께 넘어가 보려 합니다. 광복을 기념할 수 없다는 해방70주년인 2015년, 정대협 스무 다섯 번째 생일인 2015년에는 할머니들과 함께 진정 기쁘게 광복을, 해방을 기념할 수 있도록 다시 날개를 펼쳐보려 합니다.


굴욕적인 한일협정 50년을 당당하고 올바른 한일관계로 애쓰며, 이 땅에 일본군‘위안부’와 같은 피해가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더 많은 무력분쟁지역으로 ‘나비기금’을 날려 보내려 합니다. 평화를 심고, 가꾸며, 거둘 수 있도록 애써보려 합니다. 이 땅에 평화가 이루어지는 그 날, 그 날이 바로 할머니들이 활짝 웃을 수 있는 날이고, 우리들도 드디어 세월에서 해방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2014년 11월 16일, 종로 2가, 옥토버 훼스트에서 정대협 스무 네 돌을 보내고, 스무 다섯 해를 맞이하는 의미를 함께 느껴주시지 않으실래요?


그 날, 반가운 얼굴들 함께 뵈옵기를 빕니다.


2014년 11월 15일.


마포 성산동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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